가수별로

[스크랩] 소양강 처녀 / 김 태희

트로트가수 유정 2017. 1. 31. 13:29

소양강 처녀의 노래가 탄생된 일화

 

1968년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명보극장 앞 네거리에서 을지로 3가 방향으로

10 m 내려가다 보면

'한국가요반세기 가요작가 동지회' 라는 사무실이 있었는데

영화와 쇼, 그리고 가요에 관계된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담을 피우던 그런 곳이었다.

 

이 작가동지회 사무실에는 윤기순(尹基順)이라는 18세 소녀가

여사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그녀가 여기서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장차 가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쳇말로 그녀는

가수의 화려한 꿈을 안고 서울에 온 강원도 촌구석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가사를 돕는데 책임이 막중한 그런 소녀였다.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인정파 젊은 가요작가 김종한 선생이

개인 레슨을 해주며 한을 풀어주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었다.

 

평소에 레슨비도 제대로 못내는 윤기순은 죄송스러워 어찌지 못하다가

한가지 묘안을 내어 스승인 김종한 선생을 비롯해서, 회장인 반야월

선생을 비롯해 작사가 고명기·류노완·월견초 선생 등을 자기의 고향인

소양강댐 상류에 초청했고, 고향집의 아버지도 자기 딸을 지도해 주는

서울 손님 맞을 채비를 했다. 윤기순의 아버지는 소양강에서 민물고기

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는 어부였다.

 

윤기순의 부모는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인다, 토종닭을 잡는다는 등 부산을 떨고 있을 때의 여가를 틈 타

윤기순은 반야월 선생에게 "회장님~ 저기 조그마한 갈대 숲 섬이 보이

시지요...거기 가면 아주 경치도 좋고 놀기도 좋아요. 우리 저 섬으로

놀러가요"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놀이문화에 일가견을 가진 그들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일행은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갔다. 그야말로 시상(詩想)

절로 떠오르는 주위 경치에 일행은 시상을 가다듬었다.

 

반야월 선생은 이때의 느낀 감정을 메모해 두었다가 다듬고 다듬어

소양강 처녀라는 가사를 만들었다.

 

1969년 봄, 반야월 선생은 이 가사를 가지고 오아시스레코드사를 방문하여

신곡으로 쓰라고 내어 주자 회사 문예부의 상담역이던 작곡가 이호 선생은

자기가 작곡하겠다고 자청했다.

 

가사가 마음에 들어 곧바로 악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노래에는 가수 지망생 중에서 김태희가 선택되었다.

당시는 음반 한장(보통 12)에 옴니버스 스타일이어서

10여 명의 가수가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12곡의 취입이 끝난 뒤 회사는 어느 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할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오아시스 전 직원을 모아놓고 노래를 들려준 후 무기명 투표로

타이틀곡(PR)을 결정하기로 했고 여기서 김태희의 <소양강 처녀>가 뽑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95년 춘천시에서는 작사가 반야월 선생을 초청했다.

춘천의 명소 소양강, 그리고 소양강 댐에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도 <소양강 처녀>의 노래비를 세울 계획을 밝히고

작사가로서 노래비 건립에 관한 자문을 요청해 왔다.

 

또한 노랫말 중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의 모델이 된

주인공이 있다면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고 한다.

 

반야월 선생은 스스럼없이 1968년 어느 여름날 소양강 상류 작은 섬에서

느꼈던 시심(詩心)과 사무실 직원 윤기순의 일화를 피력했다.

 

여기서 노래비와 배경에 소양강 소녀 동상도 만들기로 결정이 되었다.

한데 현재 노래의 주인공이 된 윤기순의 행방이 묘연했다. 소양강 상류에

살고 있는 윤기순네는 이사를 가 버린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춘천시에서는 경찰국에 협조를 의뢰, 전국적인 컴퓨터 조회 탐지로

윤기순이 광주시에 살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끝내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또한 가정 형편상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취입곡 하나 없는 한 많고 설움 많은 무명가수

윤미라로 광주의 야간업소에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후 윤기순과 <소양강 처녀>에 얽힌 사연은

KBS-TV [이것이 인생이다] 시간을 통하여 방송(2000)되기도 했다.

 

 

그리고 노랫말 2절에 동백꽃은 흔히 바닷가에 피고지는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꽃을 강원도 지역에서는 동백꽃,또는

동박꽃으로 부르는 사투리를 작사가 반야월선생님이 지역 정서를

살리기 위하여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출처 : ♬미리내 소리사랑♬
글쓴이 : 이다시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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